나 성자와 통하여라.
  
 작성자 : HeavenArtist
작성일 : 2017-12-20     조회 : 515  

나 성자와 통하여라.


나 성자와 통하는 것이 그리도 크다. 나와 통하는 자가 나의 말씀도 받는다. 
나 성자를 사랑하고 좋아해도 나와 통해야 되지 않겠느냐.
안 통하면 사랑한 보람이 어디 있고, 좋아한 보람이 어디 있고, 믿은 보람이 어디 있느냐. 
나와 통하는 자는 영적으로 나와 사랑하는 자다.
너희 뇌, 즉 너희 마음이 나 성자와 통하는 것이 참으로 크고도 큰 일이다. 
안 통하면 사랑도 식고, 사탄도 공격한다. 

나 성자가 전화하듯이 나의 마음을 너희 마음에 보낸다. 
어느 때는 나 성자가 직접 너희에게 가서 옆에서 통하려고 나의 마음을 보낸다. 그런데 너희 마음이 통화 중이다. 
‘다른 자와 통화가 끝나면 나의 마음과 통하겠지?’ 했지만, 끝나도 또 다른 자와 통한다.
다른 자와 통할 때는 자기 생각, 자기 의지, 자기 주관이 선풍기처럼 회전하고 있으니 계속 나와 못 통한다. 
자기 사랑하는 자가 뒤에 있는데 쳐다보지 않으니 모른다.

또한 나 성자가 너희를 온종일 따라다녀도 ‘생각의 눈, 마음의 눈’으로 안 보니 못 깨닫고 모른다. 
마음의 눈으로 나 성자를 간절히 찾으면서, 마음의 눈을 나 성자에게 돌려야 그때 나와 통한다. 
너희가 기도할 때 나와 잘 통하니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마음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아라. 마음으로 정신일도 하여 먼저 나를 찾아라. 
나를 생각해야 나와 통한다. 이것이 나와 최고로 잘 통하는 방법이다.
옛날 선지자들도 중심자들도 그같이 전심으로 하여 하나님과 통하고 계시를 받아 성경에 써 놓았다. 
그 계시는 때가 되면 자기의 것도 역사의 것도 다 이루게 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통함으로 역사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나 성자가 너희와 통하려 해도 너희의 마음•정신•생각이 다른 데 있으면 절대 안 통해진다. 
그 순간 중한 것이 있어 통하려 하고, 사랑하여 통하려 하고, 기도한 것에 대한 답을 주려고 통하려 하는데, 
너희가 다른 데 마음과 정신을 쏟고 사니 나와 안 통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 종일 지켜봐도 내게 마음 문을 열지 않아 나와 통하지 않는다. 
어느 때는 3일, 어느 때는 일주일 동안 나 성자에게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어느 때는 나 성자가 주일, 수요일, 새벽 말씀으로 통하려 했는데 말씀도 깊이 집중해서 안 들으니, 
나와 통하게 하는 말씀이 단상에서 지나가도 못 통하고 그냥 지나친다. 

새벽에 정한 기도 시간에도, 평소 때도 수시로 늘 마음의 주파수를 내게 맞춰 놓고 있어라. 
주파수만 맞추면 라디오 방송이 나오듯이, 나에게 너희 마음의 주파수만 맞추면 반드시 나와 통하게 된다. 
자기 생각과 자기 주관에 치우쳐 살게 되면 나 성자와는 안 통한다. 
‘나 성자와 통하기’다. 
절대 믿으면 믿음으로 통하고, 절대 사랑하면 사랑으로 통하고, 
감사하면 감사로 통하고, 기도하면 기도로 통하며,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말씀으로 통한다. 
통하는 단계가 사랑하는 자와 사랑이 통하는 단계다.
너희가 나 성자와 통하지 않으면 나의 신부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앙이 병들어 신음하다 죽는다.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증거하면 강철 같은 믿음의 영웅이 된다. 그 터전 위에서 나 성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고로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매일 듣고 행하며 살아라.
뿌리가 약한 나무를 보아라. 나무의 근본인 뿌리가 약하니 하루하루 죽어 들어간다. 
혹여 열매를 연다 해도 실하지 못한 열매를 연다. 
이와 같이 말씀의 근본을 확실히 모르고 사는 자는 신앙의 뿌리가 약해서 
하루하루 신앙이 죽어 들어가 그 영이 바싹 말라 있다. 
반면 뿌리가 강한 나무를 보아라. 
나무의 근본인 뿌리가 강하니 나무가 튼튼하고 열매를 열어도 실한 열매를 연다. 
이와 같이 말씀의 근본을 확실히 알고 사는 자는 신앙의 뿌리가 강하여 그 영이 튼튼하다.

나 성자와 통하는 데 최고 기본은 ‘말씀’이다. 
말씀의 배선이 굳건하게 깔리면, 말씀의 선을 통해 사랑의 고압전기가 흐른다. 
말씀의 근본이 없는 사랑은 약하다. 축복도 늘 말씀을 통해서 간다. 말씀을 근본으로 해야 축복도 안 뺏긴다.
말씀의 근본이 없는 자는 가다가 시험에 들면, 태풍에 나무들이 쓰러지듯이 일순간 쓰러진다. 
말씀이 머리에 꽉 차지 않은 연고다. 
각자 ‘말씀의 빛’의 강도를 보아라. 
5촉(W, 와트)이냐. 10촉이냐. 30촉이냐. 60촉이냐. 90촉이냐. 120촉이냐. 혹은 2000촉이냐. 
너희는 어느 선에 있는지 보아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통하여라.
자기 영을 100% 나의 신부로 변화시켜야 된다. 
그러려면 나와 통하는 단계, 곧 나와 사랑하는 단계로 와야 된다. 
다른 자와 통하고 다른 것과 통하느라 나 성자가 너희 마음에 전화를 걸었을 때 ‘통화 중’이면 안 된다.
내가 급해서 너희와 통하려고 하는데, 너희가 다른 데 빠져 통화 중이면 되겠느냐. 
통할 마음이 없는 자는 휴거에도 천국에도 별 뜻이 없는 자가 아니냐. 그러니 나와 상관없는 자가 아니냐. 

나와 통하자. 
너희와 통하려고 말씀을 준 삼위일체 성자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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