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에 속해 ‘영의 생각’으로 해라.
  
 작성자 : HeavenArtist
작성일 : 2018-06-20     조회 : 374  

‘영’에 속해 ‘영의 생각’으로 해라.

【본 문】고린도전서 2장 12-14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쁘나 고통스러우나, 그때만 기쁘고 고통스럽다.
그때가 지나가면 다 잊게 되고, 긴 세월도 짧게 생각된다.
고로 사람은 지난날을 생각하며 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든 고통이든 ‘지금’을 누리고 사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루가 일 년같이 지겹게도 안 가던 날들도 한 세월이 가면, 엊그제 같습니다.
사람의 뇌는 그때가 지나가면, 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은혜도 그러합니다.
늘 삼위가 도와주셨어도 지난날은 세월이 가면 잊게 되니, 
그때마다 삼위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잊지 않게 깊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나고, 잊지 않게 됩니다.

죄는 ‘담’과 같아서, 갈 길을 막고, 삼위의 뜻을 막습니다. 고로 자기 죄는 자기가 즉시 회개해서 없애 버려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죄’입니다. 
할 일은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안 하는 것이 ‘의’요, ‘죄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죄를 ‘의’로 다스려라. ‘의의 시간’으로 쓰고 다스려라.
저마다 능히 다스릴 수 있으니, 자기 마음과 생각으로 다스려라.” 하셨습니다.
죄는 자기가 행하지 않아야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죄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의지대로 합리화하면, 그것이 ‘하나님 법 안의 일’로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해결해야지, 합리화로 해결하면 안 됩니다. 
자기 생각이나 의지로 해 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법 안에서 행하면 죄도 자기가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고, 사탄도 자기가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 제일 무섭습니다.
하기 좋을 때는 산을 넘고 밤을 새는데, 하기 싫은 때는 밤이 낮이 돼도 안 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하기 싫어서 안 하게 되니, 하고자 할 때는 ‘영’에 속해 행해야 됩니다.
‘육’은 환경을 타고, 분위기를 타니, 그때의 여건에 속해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은 강하니, ‘영과 혼’과 함께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행하면
환경도, 분위기도 다스리고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항상 ‘자기 생각’을 중심하면 안 됩니다. 그 생각이 성령의 생각을 가로막습니다.
‘자기 그릇’은 하나입니다. 거기에 ‘자기 마음과 생각’을 담으면, 주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담을 곳이 없습니다.
‘자기’라는 그릇에 어떤 생각을 담느냐에 따라 그대로 행하게 됩니다.

만든 것이 없으면 쓸 수가 없으니, 만들어야 됩니다. 
들은 것이 없으면 내놓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으면 알 수 없으니, 
매일 주 안에서 성령으로 배워서 자기 그릇에 주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을 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한합니다.
육에 속한 것을 배우면 육으로만 아니, 육의 것만 행하게 됩니다.
‘영에 속한 것’을 배우면서 성령과 함께 행해야 됩니다. 주와 함께 행해야 됩니다.
희망도, 기쁨도, 사랑도 ‘육의 것’은 영혼의 만족도 없고 허무하게 끝납니다.
‘영의 것’만 영원하고, 육도 영도 만족하고 허무하지 않습니다.
고로 육의 것도 영의 것으로 만들어 살면 삼위의 주관권의 삶이 되니, 육도 영도 형통하고 영원합니다. 

‘육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니, 사망이요, 대립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이요, 구원이요, 평안입니다. 
삼위의 생각은 모두 ‘영의 생각’입니다. 영원하고 높고 깊은 생각이며, 육과 영을 형통하게 합니다.
항상 삼위의 생각으로 행하기 바랍니다. ‘묻고 행하는 것’이 인간의 지혜입니다.
육신의 생각 차원에서 누리면, 차원이 낮아서 작게 누립니다.
차원을 높이면, 전체를 차원 높게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차원을 높이면, 다르게 보입니다. 차원을 높인 사람이 뭘 해도 합니다.
‘자기’라는 그릇에 주의 생각을 담고, 차원 높인 영의 생각으로 행하여
주와 함께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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